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건강/정신건강

[정신건강] 신경정신과 환자가 말하는 경험과 발병원인②

by 한량, 한냥 2024. 5. 31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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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난 번 포스팅에서는 제 경험을 쭉 말씀드렸었습니다. 이번 포스팅에서 이어 말하기로 했었죠? 다시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. 바로 시작하겠습니다.

 

정기 인사 이동으로 회사에서 악명 높은 사람이 새로운 상사로 부임했어요. 엘리베이터에서 동료 직원들을 만나면 어쩌냐며 걱정할 정도였으니 직장인 분들은 아시겠죠?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. 이 상사의 특징은 특정 성별의 직원들은 건드리지 않고, 나이 제일 어린 직원 하나를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것이었어요. 알게 모르게 교묘히 괴롭히는 그 방식..... 처음에는 저보다 후배인 친구가 타겟이었습니다. 후배가 참지 못하고 부서 이동을 하자 다음 타겟은 제가 되었고, 그때부터 제 공황장애는 시작되었습니다.

 

공황장애인 것을 처음 안 날 기억을 되살려 볼게요. 그 날은 평범한 하루로 출근해야 하는 날이었습니다. 그러나 시작은 평범하지 않았어요. 핸드폰 알람을 들으며 깨어났어야 했던 아침에 저는 누군가 제 심장을 쥐어짜서 터뜨리려고 하는 고통 때문에 눈을 떴어요. 침대에서 굴러 떨어질 만큼 몸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어요. 하지만 그 날은 회의와 출장이 있는 중요한 날이었기에, 억지로 씻으러 들어갔습니다. 씻으니까 조금은 나은 것 같더라구요. 겨우 회사에 갔는데 회사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저는 쓰러지듯 주저앉아 버렸습니다. 그대로 응급실에 실려갔어요. 심장이 아프다고 하니까 응급실에서 우선순위로 진료를 받았어요. 그런데 여러 검사를 해 봐도 정상으로 나오는 거에요. 의료진은 제게 공황장애 진단을 내렸습니다.

 

집에 돌아와서 받아온 약을 먹고 빠져들듯 잠에 들었어요. 오랜만에 맞이한 평화였어요. 그 날 이후로 매일 약을 먹고 있습니다. 가끔씩 공황 발작이 찾아오지만 약을 먹으면 괜찮아져요. 어떻게 공황장애를 이유로 수사를 피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, 왜인지 알 것 같아요. 제정신이 아니게 되거든요. 눈 앞이 새하얘지거나 캄캄해지기도 하고, 숨을 못 쉬게 되기도 하고, 정상적인 판단이 되지 않아요. 아마 수사 중에 아무말대잔치를 벌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건가 싶네요.(저는 범죄자는 좀 아무말대잔치라도 해서 자백했으면 좋겠다 주의지만요)

 

저는 아직까지 정신과에 다니고 있어요. 제가 진단받은 병들은 꽤 많은데 - 공황장애, 수면장애, 불안장애, 조울증, 우울증등입니다. 앞에 세 개는 보통 같이 다닐 수 있다고 하네요. 조울증과 우울증은 동시에 있을 수도 있대요. 그리고 우울증은 생각보다 거창한 게 아닐 수도 있어요. 죽고 싶다, 이렇게 살면 뭐 하지, 다 허망하고 쓸데없다, 그냥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꽤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우울증이에요.(각각의 병에 대해서 앞으로 포스팅을 통해 하나씩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)

 

지금까지 꽤나 길게 제 경험과 발병원인을 써 봤습니다. 경험은 알겠다 치고, 발병원인이 그래서 뭐냐고요? 맞아요. 스트레스에요. 그놈의 스트레스. 만병의 근원이죠. 하지만 스트레스라고만 말하면 항상 뜬구름 잡는 얘기가 되어버려요.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, 적당한 스트레스는 업무 생산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잖아요? 그럼 어떤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왔는지, 어떤 부분이 치명적이었는지 제가 생각하는 제 발병원인을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.

 

  1. 지나치게 남을 배려하고 의식하는 마음 
    • 개인적으로 이게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. 제가 착하다는 말은 아니고 눈치를 본다는 말에 가까워요. 저는 대가족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른들의 훈수도 많이 들었고, 공동체 생활에 녹아들어 남에게 피해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거든요.(가족 탓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. 맞는 말이에요) 그래서 제 행동이 피해를 주는 것인지 아닌지 타인의 반응을 살피는 게 버릇이 되어 버렸던 것 같아요. 지나치게 살폈던 거죠. 이런 의식들이 구조상 모두가 저를 쳐다볼 수밖에 없는 업무 부담감과 겹쳐서 공황장애를 만든 게 아닐까 싶어요.
  2. 지나친 완벽주의
    • 저는 기질상 완벽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. 손을 대면 사소한 디테일까지도 완벽해야 해요. 제가 처음 하는 일이더라도 역대 최고의 결과물을 얻어야 하고, 꼭 칭찬이 듣고 싶어요. 이런 기질은 제 어린 날 저를 크게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했지만, 양날의 검이라는 걸 지금은 깨달았습니다. 선임급이 된 지금은 완벽하게 못 해낼까봐 시작이 두려워지기도 하고, 잘 안 풀리면 스트레스를 크게 받기도 하고, 마무리가 더 늦어지기도 해요. 완벽하게 못 해낼까봐 또는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불안해하는 마음이 제 불안장애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.
  3. 번아웃
    • 저는 가능하면 갈등을 피하고 상황을 더 낫게 하기 위해서 남이 부탁하면 제가 뭔가를 더 하더라도 들어 줬어요.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그 순간은 기분도 좋았죠. 하지만 연차가 쌓이고 피로가 누적되면서 번아웃이 찾아왔어요. 그리고 이렇게 최선을 다해도 회사의 평가는 제 맘대로 되지 않죠.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구요. 어렸을 때에는 제가 열심히 일하면 모두가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. 하지만 아니었죠. 남은 것은 그나마 쌓인 업무 노하우, 너덜해진 제 심신, 수면장애, 우울증 뿐이에요.
  4. 너무 여린 마음
    • 이거죠. 남이 뭐래도 극복해서 괜찮을 정도로 단단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, 저는 그렇지 못했어요. 저보다 더 어려운 일, 책임이 막중한 일을 맡으신 분들도 계실 텐데 저는 이 정도 일로도 고꾸라지고 말았네요.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, 인정하기로 했어요. 저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던 거에요. 그리고 그걸 미리 알았어야 했습니다. 제가 제 스스로에게 관심과 사랑이 너무 없었던 거죠. 그냥 부모님처럼 또는 부모님보다 더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바빴을 뿐, 약한 마음을 가진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. 이제는 인정하고 스스로 저를 아끼고 보호해 주려고 해요.

 

긴 글인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. 읽고 나신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셨는지도 궁금하네요. 공감을 많이 하셨을까요, 나도 이렇게 될 수 있겠다고 걱정을 하셨을까요, 이게 뭐야 왜 이런 걸로 병에 걸리는 거야 하셨을까요? 사정상 자세히 밝힐 수 없는 부분들도 있어서 생략된 이야기가 많아요. 궁금하신 점은 비밀 댓글로 남겨주시면 답글로 남겨 드릴게요.